광화문 풍경

저층주거지밀집지역에서만 놀다가 일이 생겨서 고층업무지역에 끼게 되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그래도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겠다며 스마트폰으로 검색, 세종문화회관 뒷편이란다. 오래된 동네니까 맛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지도만 보고 들어선 길에서 ‘경희궁의 아침’을 맞딱뜨렸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우주에나 둥둥떠다녀야 할 것 같은 무지막지한 매스덩어리를 보고 깜짝 놀람. 그런데 이름이 경희궁의 아침..이라니.

스마트폰이 안내해서 찾아 간 곳은 지하 아케이드, 이런 공간에선 절대 밥 못 먹겠다며 다시 찾아간 곳도 지하 아케이드, 광화문까지 나들이 왔는데 한번 더 찾아보자며 또 다시 찾은 곳도 지하 아케이드.. 결국 포기. 지하아케이드에 있는 식당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에 몰린 직장인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목에는 전자키를 하나씩 두른 사람들이 지하에 조각조각 나눠진 식당공간에 꽉차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데…답답하고 왁자지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하에는 심지어 칵테일bar도 있었다. 저기 가는 사람도 있을까? 위층 사무실에서 열받고 잠깐 일잔하러 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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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다 보고 마땅한 커피숍을 못 찾아 스타벅스에 들어섰다. 야외에서 담배나 한대 피자. 테이크아웃,  뒷문 야외 주차장으로 나왔다. 나무그늘에 서서 살펴보니 여기저기 금연표시. 오랫만에 도시의 메인스트림에 나와서 고생했는데 궁색하게 식당냄새나는 좁은 골목에서 피긴 싫었다. 여기저기 살피고 궁리 끝에 결국 스타벅스 옥상에 흡연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올라가게 되었다.

동네에서는 가지도 않는 스타벅스지만, 광화문 스타벅스 옥상은 생각보다 시간보내기 좋았다. 넓은 광화문광장이 보이고, 전투적이고 위엄있어보이던 이순신 동상을 참 친근한 눈높이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숏다리로까지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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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뒷편은 다 헐려버렸고, 세종문화회관 뒷편도 재미없고, 광화문 광장은 석고대죄하는 장소같다. 서울의 중심공간인 만큼 고층빌딩들도 많은데 내 머릿속엔 광화문 지역이 역사 깊은 지역으로만 각인이 되어서 다른 그림을 가지고 그 지역을 지나기만 한 것 같다. 대로변보다 골목길로 다니는 습성때문에 고층빌딩들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 보다도 대로변 고층빌딩들 뒤로는 항상 오래된 골목들이 꾸불꾸불 있는것이 이 지역 도시구조의 규칙처럼 알고 있었는데 오늘도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하고 움직였던 것인데 예상을 깨고 경희궁의 아침 같은 빌딩이 나타나니까 당혹스러웠던게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로변 빌딩들 뒤에 짠!하고 나타나는 올망졸망 건물들과 꾸불꾸불 길들이 살아남으면 좋겠다.

커다란 고층빌딩, 그런 빌딩들이 가지고 있는 지하아케이드 식당.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짧은 점심시간에 사방팔방 다 막힌 지하공간 안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건  참으로 갑갑하오.

금연표시가 없어도 공공장소에서는 금연- 공익광고, 광화문광장 청계광장에서는 흡연시 과태료 10만원.이란다. 그럼 흡연공간은 어딘지도 좀 알려주지. 여기저기 금연… 적응 안 된다. 지하세계에서만 연명하던 인간이 오랫만에 지상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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