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J의 근대주거 생활기

구조를 보고 추론하건대 이 집은 60년대 지은 집이다. 아궁이가 있었고, 거실은 온돌없는 마루였다. 바닥밑을 메우지 않고 그 위에 온돌을 놓아 지금도 바닥이 쿵쿵울린다. 친구들과 이 집에 대해 수다를 떨다보니 내가 한 순간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이 집에 세를 들었나 싶기도 하다. 집을 보고 나서 바로 다음날 계약을 해버렸었다. 연희동집을 계약했다가 파기하고 집에 대한 스트레스가 최고조였던데다가 트인 전망과 마당, 변화있는 공간들이 맘에 들었다. 밖에 있는 화장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주변은 대부분이 외국인 빌라이고 신축된 다세대 건물들인데 이 집을 포함 작은 단층집 5채만이 섬처럼 덩그란히 남아있다. 현대화된 도시 속에 마치 유적처럼,  있을 수 없는 곳에 달동네 같은 좁은 입구를 가진 신기한 집이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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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의 손길/ 싼맛의 달콤함은 금방 잊혀지나 저질의 쓴맛은 오래 남습니다 -헤펠레리테일샵-

우리집 옆집엔 일용직 노동자 아저씨가 아들 둘과 살고 있었다. 단층집 건물에 공간을 분리해서 2가구가 산 것이다. 내가 이사하기 전에 주인할머니의 의뢰로 이 아저씨가 이 집을 수리 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얄팍한 기술, 그의 생활 수준, 저렴한 비용, 한편으론 눈가리고 아웅… 내 시선에선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공사였다.

완성이 되었다고 하는 집이란 것이 다락의 얇은 베니어 합판은 낡아서 잘 못하면 바닥이 뚫어질 것 같았고, 다락천정은 불룩하게 내려와있었다. 다락문은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페인트를 하도 덧칠해서였다. 오랜 세월동안 덧바른 벽지 위에 페인트를 칠해서 꿀렁대는 벽지에서 페인트 가루가 조금씩 계속 떨어졌다. 샌드위치 판넬로 덧댄 공간에는 틈이 그대로 보였고, 불필요한 가스관도 없애지 않고 심지어 어떤 창문은 안과 밖을 거꾸로 달아 방충망을 안쪽에 달아야했다. 거실에 문이 있는데도 외출할 때는 부엌문으로 나가야했다. 외부에서 잠그는 장치란 것이 부엌문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물통으로. 욕실 바닥은 구배를 맞추지 못해 몰이 한쪽으로 고였다. 수세식 화장실공사를 하는데 정화조까지 가는 관이 밖으로 노출되어있었고, 벽과 천정 사이가 벙 떠있었다. 일부 외부마감은 OSB로 해놓고 아무런 마감을 하지 않아 물에 불어 터지고 썩고 있다. 이 OSB가 비싼 마감재라고 했댄다.

아흐….지적질을 하면 끝도 없다.어찌될지 뻔히 보이는 결과를 생각하지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무슨 공사를 이렇게 하나. 한심해보이기만 했지, 나에게 밀착된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육체 노동을 하면서 허술한 집을 고치는 대충목수 놀이가 재밌었다. 마당도 좋고 바람도 좋고 전망도 좋았다. 게다가 주변이 모두 주택가여서 산사처럼 조용했고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낭만은 사라지고 겨울이 왔으니, 이 집의 헛점들은 계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문과 창문은 심각하게 틈이 많았다. 보일러 성능은 좋아서 뜨거운 물도 잘나오고 바닥은 뜨끈한데 실내에서 입김나올 정도였다. 후에 창틀을 바꿔주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근본적인 단열문제는 어쩔 수 없었다.

옆집에서 물을 뜨러 아침마다 문을 두드렸다. 옆집 수도가 얼었다는 것이다. 옆집 아이들은 보일러도 없는 냉방에서 전기장판으로 지냈다.

공동 화장실이 얼었다.

‘거지도 부자동네 거지가 낫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ㅠㅠ

겨울은 친구네 집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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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1cm의 비밀

겨울에 화장실이 얼어버려서 문제였지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것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몇개의 문이 옛날 문이라 무척 낮아서 머리를 숙여 드나들어야했는데 익숙치 않아서 머리를 부딪치고 이마가 벌겋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곧 적응이 됐다. 잘게 쪼개진 공간들의 성격을 대청소할 때마다 바꾸는 재미도 있었다. 마당에 고추를 심어 끼니때마다 따먹을 수 있는, 남산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움이 있는 공간이었다. 공간의 많은 불편함이 생각보다 쉽게 적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북향집에다 최악의 단열조건을 가진 집에서 추위라는 것은 끝까지 적응이 안 됐다. 구식 알루미늄창호를 하이샷시로 바꾸는 과정에서 창호를 뜯었는데 벽의 단면에서 단열재가 보이지 않았다. 기겁을 하고 자세히 보니 내부에 발라진 벽지에 붙어있는 1cm 스트로폼을 발견했다. 숨겨진 1cm의 비밀. 기가막혀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할머니는 창문 2개를 바꿔주셨지만 옆에 있는 창문도 바꿔야 된다는 지식과 경제적 여유는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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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이웃

겨울을 친구네 집에서 지내다가 날이 풀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옆집과 공동으로 쓰는 전기세를 반씩 부담했는데, 어느날 부턴가 아저씨는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보이는 상황에서 전기 끊겠다는 고지서가 계속 날라왔다. 몇년간 월세도 제대로 못 내면서 생활을 했지만 주인할머니는 고3인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해줄테니 공과금은 내라는 이야기를 하셨댄다.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을 하다가 척추질환을 갖게 된 이후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보다. 될리가 없지. 종적을 감춘 아버지 실종신고를 한 큰아이는 동생을 데리고 살 걱정에 머리감을 때마다 머리가 한움큼씩 빠진다고 했다. 내가 사는 방 바로 옆 아이들의 상황. 내 앞에 벌어진 실제상황이다. 내 머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계속 높아지다가 이제야 겨우 이성적으로 생각할 여유를 찾았다. 10대 친구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 아버지가 무책임하다고 했지만 입장을 바꿔생각해보면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상황들에 부딪쳤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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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커뮤니티

재개발이 되지 않은 오래된 거주지다보니 어르신들이 많다. 동네길에 옷을 걸어놓고 1000원 2000원씩에 파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삼삼오오 친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이사를 앞두고 아름다운 가게에 물건들을 좀 보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그 할머니와 마주쳤다. 물어보니 쓸 수 있는 옷들은 팔고, 나머지는 재활용쓰레기로 용돈을 버신댄다. 쓸수 있는 것 없는것 상관없이 다 달라신다. 나에겐 더 좋은 조건으로 기부를 할 수 있었다. 그 후에 H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는데 “아 거기… 거기는 두 딸 다 시집가서 미국 가 있고 아들이랑 사는데… 그 치는 살만한 형편이야. 욕심이지.  여기 저 위에 두 노인네가 손주 둘 데리고 사는데, 나 여기 매일 모아두잖아 그 여자가 와서 가져가니까 여기에 모아놔. 그럼 와서 가져가, 쇠붙이 신문 이런거 있지 여기에 모아놔…거길 도와야지.” 나름 분리수거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는 사람이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예전처럼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분리수거를 더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철물점 아주머니, 샷시집 아주머니, 타코집 언니… 기분좋게 인사할 사람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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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차이

몇일전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집으로 이주를 했다. 내가 살던 이 집은 어느 가족이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 것 같아 들여다보니 그 예쁜 집을 샌드위치 판넬로 두르고 있었다. 작은 마당은 좁은 통로가 되어버렸고, 다락도 털고 공장같은 입면을 가진 집이 되어버렸다. 정취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얼마나 좋았는데, 이 집에 가장 큰 장점을 샌드위치 판넬로 막아버렸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고 신경쓰면 예쁘게 고칠 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

개인 화장실이 있는 새로운 주거지에는 열쇠를 안 가지고 다녀도 되는 번호키도 달렸다. 집구조가 여기도 요상하다. 빈공터가 있는 한쪽 벽을 터서 그곳을 마당으로 쓰겠다고 하니 주인집 왈, 그거 귀찮게 관리해야되고 왜 일을 만드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당있는 집이 없는 집 보다 더 좋지 않은가….??

이 생각의 차이들을 어떻게 어쩐다? 어떻게 접근을 한다? 어이쿠… 좋은 공간이 뭔데? 난 마당이 좋은데 주인집은 마당이 귀찮대잖아. 난 흙과 풀이 좋은데 그 사람에게 풀은 지저분하고 콘크리트바닥이 좋대잖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내 생각이 답도 아닌데, 가치기준도 다르고.

뭐가 뚜렷이 보이는 것도 없이, 사람들의 관계, 그들의 사정, 복잡한 동네 속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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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집이 특이한 것 같지?

그런데… 이런 집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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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네 방을 보여줘, 건축가 J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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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sponses

  1. 예전에 살던 집들이 생각나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집과 집 주변에 있는 이야기들을 재밌게 전하시네요. 참 좋습니다.

  2. 인터뷰 기사보고 검색해서 왔어요.^^ 집에 대해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저두 3년전 부터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되었거든요. 집은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사는 곳엔 그들의 역사와 추억이 존재하는….”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젠 서로 존중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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