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건축] 창덕궁 돌담에 붙은 집

성곽정비 이전에 성곽에 붙어 생긴 집들을 발견했었다. 성곽주변으로 텃밭도 있었고…

그런데 정비 후 찾아가니 산책길만..  길.길.길…뿐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이런 집들도 간혹 있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복원이냐 공존이냐. 조선시대와 하이테크 밖에 답이 없는…  ㅡ.ㅡ

다음지도

요금문(曜金門)의 이름은 ‘빛날 요(曜)’와 ‘쇠 금(金)’의 합성어로 ‘금이 빛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오행(五行)에서 금(金)은 서쪽을 가리키므로 ‘서쪽이 빛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요금문 근처에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군대를 보내준 명나라 신종(神宗)황제를 기리고자 지어진 대보단(大報壇)이 있어 대보단으로 출입을 위해 사용되거나 군사들을 모이게 하여 잔치를 베푼다든가, 춘당대에서 행한 시험에 입격한 사람들에게 시상을 주는 등 무신(武臣)과 관련된 행사와 관련된 내용이 주로 기록 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의 토지를 관장하던 일인 관리들의 주택들이 원서동에 변한 궁궐담 주변을 따라 위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원서동은 1914년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이전 북부 광화방의 원동, 관동과 양덕방의 계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동의 이름을 그대로 따랐다가 1936년 4월 1일부로, 창경원 서쪽에 있다는 이유로 원서동으로 고쳤다.

창덕궁의 서쪽 담장을 따라서는 창덕궁길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이 길은 창덕궁의 돈화문과 신선원전을 잇는 옛 순라길로서, 원래 동측 일부가 궁의 경내에 속하던 부지였으나, 궁 내부에서 이어지던 물길이 복개됨에 따라 오늘날의 도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외삼문 옆, 빨래터 부분부터 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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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빨래터부터 빗금친 부분이 물길이다. 현재는 복개되어 ‘구거’로 되어있고, 창덕궁 담 내부에서 다시 ‘금천’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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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요금문 옆, 담벼락에 붙어서 길게 늘어선 건물

본 건물은‘하천 부지 사용료’ 명목의 세금을 내고 있다. (복덕방어르신의 말)

후원의 서쪽 외곽 담을 따라 남류하여 궁궐 밖에서 궁궐안의 금천교로 흐르는 물길이 있었으나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물길 가에 지어졌던 주거들과 창덕궁 담 사이에는 3.5m 내외의 길이  생겨났는데 그 길  위에 본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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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에 매직으로 쓰여진 거주자 이름들… 조씨, 강씨라고 씌여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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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요금문 바로 옆에 위치한다. 창덕궁 요금문 쪽에서 진입하는 출입구가 유일하고, 길다란 통로에서 각각의 방으로 바로 들어가게 된다. 거실이나 부엌등의 공간이 없이 문을 열면 바로 방이다.

문화재-창덕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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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동쪽벽은 창덕궁의 담이다.  2.2m의 궁궐 담 외면과 함께 방 공간을 이루고 있다.

통로에 면한 방 벽체는 시멘트블럭으로 쌓은 벽이고 약 2m로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 방 벽체는 주요한 구조 벽으로서, 각 가구 사이의 벽체와 그 상부의 슬레이트 지붕을 지지하고 있다.

이 방 벽체와 서쪽 외곽의 벽체 사이에 2”x4” 목재로 짜여진 격자 프레임 위에 투명한 플라스틱 골 슬레이트 지붕을 지탱하여 1.2~2m폭의 통로 공간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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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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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식 통로를 통해 중간 공간이 없이 바로 각각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총 5가구가 단칸방에 살고 있고, 통로에는 방에서 소화할 수 없는 각종 가구와 집기들이 나와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을 비롯한 주방가구들과 함께 세탁기나 세면도구들이 있다.

복도 끝 E가구를 제외하고 통로는 칸막이 없이 연결이 되어있지만 자기가 쓰는 가구나 물건들은 각 방의 길이만큼만 통로영역을 사용하고 있다. 방외의 사이공간이나 작은 실들은 창고나 보일러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는 모두 가스보일러를 사용한다. 화장실은 1개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 공간을 덮은 지붕선을 보면 처음부터 통로까지 염두에 두고 건축한 것 같지는 않다. A가구는 상대적으로 넓은 영역을 사용하고 있어서 방문 앞으로 툇마루가 있다. A가구의 지붕선도 다른 가구에 비해 길게 나와있다. 통로의 지붕 골조 형상, 재료, 그리고 면의 경사도와 방향이 가구마다 다르다. 빗물받이는 통로 내부에서 볼 수 있는데, 지붕선의 구분은 A가구와 B가구가 각각 별도의 지붕을 가지고 있고, C가구와 D가구가 같은 지붕선을 이루고 있다. E가구는 별도의 지붕선을 가지고 있다. 지붕선으로 매스를 구분해보면 A, B, C+D, E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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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투명지붕이 덮힌 통로는 과거 좁은 골목길이었고, 골목길 맞은 편 집이 철거되고 남겨진 벽을 막아서 통로로 사용하게 되었다. 통로의 외벽은 과거 주거건물의 벽으로 현재도 각기 다른 마감재료들이 철거된 각 방의 용도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철거 후에 남겨진 이 벽체는 현재 통로의 외벽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벽만 철거를 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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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외벽부분이 길에서 보인다. 일부분은 타일이 아직도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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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D, E주거는 가가 단일 주거형태로 있었고, 주거공간은 부엌과 방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외부공간이었던 골목이 투명한 골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으면서 일체화된 내부 통로를 만들게 되었다. 통로공간이 지붕으로 막히면서 부엌가구들과 집기들이 통로로 나오고, 방+부엌이었던 주거공간은 큰방으로 개조하게 되었다.

요금문 앞에 통로 문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고 문 양쪽에는 각각 화장실과 창고가 있다. 통로를 빠져나와 밖에서 화장실을 가게 되어있다.
각 가구의 입구는 2짝 미세기 나무문으로 되어있고, 작은 창문이 하나씩 있다. 통로 천정이 투명재료이기 때문에 채광은 좋지만 일체식으로 지붕이 덮여있기 때문에 환기에는 좋지 않다. 통로 외벽으로는 이전에 철거된 주거에서 만들어 놓은 창문들이 불규칙하게 있다.

2012년에는 출입문이 낮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했던 출입문이 교체되었다.  밖으로 나와 사용하던 공동화장실이 통로 내부에서 출입하게 변경되었고 수세식으로 바꿨다. 또한 우측의 창고공간이 없어졌다. A주거는 통로의 부엌가구를 새로 바꾸고 통로 천정까지 나무로 마감하고 천창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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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부동산 할아버지를 만났다. 길고 긴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물가는 남자에게 별로 안 좋다 부터 시작해서 “이태원은 살곳이 못 된다. 가회동 참 좋다. 내가 노인회 회장인데 여기가 공기도 좋고 살기가 좋아서 장수마을이다. 노인정에 90넘은 노인네가 20명이나 있다.” 등등…

부동산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이 한국 초기 건축가가 살던 집인데… 어쩌구저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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