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216 용산e편한세상 104동
옛주소: 서울 특별시 용산구 당고개성지3길 2 (신계동 1-257)
만든 시기 : –
재료 : 목조
사진찍은 날짜 : 2005-07-31
2005년 여름 적산가옥을 찾아 지인들과 용산구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보게된 합동주택.
지금은 철거되었고, 이 자리에는 용산e편한세상 104동이 서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1. ‘일본인 철도 근무자들의 숙소로 사용됐던 목조 2층 주택’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71159#home
2. 용산구 신계동에 위치한 철도청 직원 합숙소 건물이다.
용산구 신계동 소재 철도청 직원 합숙소(현 합동주택, 정면의 현관으로 들어가면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위치)/2004
출처. 『보광동 사람들, 보광동』(2008), 1권, 93쪽 https://museum.seoul.go.kr/cgcm/board/NR_boardView.do?bbsCd=1012&seq=00000000000012357&tr_code=m_img
근대화의 표상인 철도를 부설하면서 철도관사는 한반도 전역에 근대화된 일식주택이 거미줄처럼 퍼지게 되었다. 당시의 철도관사는 문화주택으로 인식되고 다량으로 넓게 분포되어있어 주거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표준도면을 통한 관사의 보급은 … 한반도 전역에 똑같은 평면에 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영단주택, 부흥주택…의 표준화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점차 한국의 기후에 적응을 위해 한국식 온돌이 도입되고 근대적 주거양식인 실내화장실과 실내 목욕탕의 설치와 일식 다다미… 서양식 응접실의 도입으로 한‧일‧양식의 절충형태를 띠고 있는 근대화된 주거형태가 나타난다.
김수영·박용환, 「해방이전 철도관사의 평면 특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000
합동주택 용산구 신계동 1번지 257
허름하고 비어진 방도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포탈지도서비스에서 신계동 1-257로 검색이 되지 않아서 옛날 지적도를 찾아 위치표시하고, 괜히 논문 뒤져보고, 원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하루가 가버림.
저 골목들을 다 누비고다녔었는데 없어졌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지도를 비교하자니 더 엄청난 변화로 느껴진다.
다락이라기엔 너무 낮은,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상부장이 많음.
가스렌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살림살이가 복도로 많이 나와있다.
이 작은 선반 하나 달자고 나무를 저렇게….
참고
통감부 철도관리국이 1907년 11월 용산으로 이전되면서… 1925년에는 774채에 이르는 대단지가 되었다. 이리하여 용산 철도관사 단지는 동일종업의 종사원을 위한 조선 최대의 집단주택단지가 되었다. 집합관사는 모두 목조 단층으로 벽은 방한을 고려해서 중국식 벽(옥석 또는 잡석을 꼬아 얽어 넣은 진흙 벽)에 외부를 시멘트로 마감하고 모르타르를 칠했다. … 1925년 7월 큰 홍수(을축년대홍수)로 용산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용산 철도관사단지 내 저지대에 있는 200여 채의 가옥이 심한 수해를 입어 파손되었다. 1925년 홍수 이후 용산에는 5백여 채의 관사가 존속했다. 수해로 가옥이 파손된 철도 직원을 위하여 좀 더 안전한 지역을 물색하여 관사를 신축해야 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용산역에서 가까운 효창원 근처… 땅에 금정 관사단지를 조성하고는 … 아파트식의 2층 건물을 지었다. 모두 외관을 목조 스터코(stucco)칠로 매끄럽게 마감했. 독채 또는 3채를 연달아 짓고 집 바닥은 시멘트, 지붕은 기와 또는 석면 슬레이트 덮었다. 겨울철 보온을위하여 온돌을 한 칸 설치한 것이 특징으로, 외관이 밝고 깨끗했다.
이영남·정재정, 「일제하 서울의 대단위 철도관사단지의 조성과 소멸」, 서울과 역사, 2017

Copyright © 2022.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