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침범: 내 영역과 그 밖의 경계

옛날엔 동네 골목마다 빨래가 나와있고, 아이들 타는 자전거부터 쓰레기통까지 여러 물건들이 나와있어 집집마다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빨래를 널러 나왔다가 지나는 이웃과 인사하고, 평상에 앉아있는 할머니들 이야기도 거들었다. 그래서 골목은 완전히 개방되어있기보다는 그 동네에 사는 이웃끼리의 공용공간 성격이 강했고, ‘외지인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 했다’고 한다. 내가 답사를 다니기 시작한 때에도 살림살이는 나와있어도 골목 안을 다니면서 외지인으로서 그런 경계의 시선은 경험하지 못 했기 때문에 ‘함부로 다니지 못 했다’는 유선생님의 말이 인상에 남았다. 마치 우리집 문앞에서 누군가 서성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듯하다. 그래서 이상한 눈으로 계속 주시하게될 것 같다. 느껴보지 못 한 경험을 상상하다보니 공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엔 골목에 뭘 내 놓으면 민폐다. 걸리적거리고 보기에 안 좋다.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이면 예쁘다 생각하겠지만 우린 모두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맘에 들 확률은 적다. 하지만 내 친구가 잠깐 내놓은 물건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동생이 내놓은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접근을 하게 된다. 내 취향은 아니어도 존중하거나 무슨 이유일지 이해를 시도하기 쉽다. 반대로 이웃들이 내 친구들이라면 나는 친구들과 잠깐 마주할 의자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집 안에 두기 거추장스러운 자전거를 밖에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모르는 사람과 이웃하며 살고 있다. 내 영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구분이 확실해졌다. 누군가 내놓은 물건은 우리모두의 권리를 침범하고 있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취향은 불편하기만하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래서 모두 조심하고 경계한다. 그래서 우리모두의 골목은 정부에서 관리한다. 이런 추세는 점점 더 강해지고 개인 영역 밖에서 취향과 정성을 목격하는 일이 줄고 있다. 더구나 이런 경향이 강한 아파트에서 틈새 공간을 찾아 점유하는 행위는 더 보기 힘들다. 피해주지 않을 틈을 찾아 부드럽게 경계를 흐리는 일, 부드러운 침범.

많이 많이 해주세요.

부드러운 침범. 호상근 작가의 작품 중에 ‘부드럽게 침범’이라는 귀여운 회화작품이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11길 9 (성수동1가 716)  2022-08-11

 

 

이 글을 쓰다가 생각난 지인의 이야기가 있다. 모 방송사 촬영이 있는 날, 한 겨울에 급하게 친구의 가게 문을 열러갔는데 어떤 X새끼가 계단에 똥을 싸놨다. 친구 도와주러 나왔는데 어처구니 없이 똥까지 치우게 됐다. 꽁꽁 얼어붙은 똥을 삽으로 깨야했는데 똥 파편이 얼굴에 튀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내 친구가 여기 왔다가 문은 잠겨 있고 급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나도 이런 상황이었다면…’ 갑자기 인간성 초월 생각을 한 지인이 감탄스러울 뿐. 순간적인 신성체험 이후 그는 거리낌 없이 똥을 치웠다고 한다.

가끔 옛날 것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받곤 하는데 시대를 떠나 사람의 정성이 보이는 것, 공간의 이야기가 읽히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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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Jinza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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