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일 불금의 밤 9시.
이 밤을 불태우고 있던 화려한 이태원 거리를 지나, 이슬람사원을 거쳐서,
수려한 외모, 훤칠한 키, 정직한 똘끼를 갖추고 있는
이태원 1% 매력남 P군의 집(Anything can happen in my place)을 방문했다.
위치 : 용산구 보광동 우사단길 인근 옥탑방
규모 : 주방1,방1,작업실1,화장실1(약 10평) + 넓은 옥상테라스
전세 : 1200만원 (이 말도 안되는 가격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뒤에서)
거주기간 : 5개월
그날의 수다맨 : 집주인 P, 동네주민 A, 동네주민 K, (총 3명)
P군은 현재 이슬람사원과 도깨비시장을 잇는 우사단길 중간지점 한 블럭 뒤편에 위치한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다.
1층 계단을 올라와, 2층 집을 감싸 돌은 복도를 따라 걸어서, 옥상으로 향한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옥상에 도착하니 왼편에 P가 거주하는 옥탑방이 있고, 오른편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 한강이 보인다. 강남의 빌딩들도 보인다. 더 멀리 관악산, 청계산도 보인다.
좋다!
동네주민 A와 K는 비슷한 풍경을 가진 집의 옥상에 서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다.
둘은 오늘 손님으로 가는거라 설거지 걱정 안해도 되거든!
옥상에 도착하니 P군이 인터뷰할 용도로 책상과 작은 조명, 의자 두개를 한강이 보이도록 꺼내 놓았다.
그러나 K군이 있는 관계로 더 넓은 책상으로 이동.
옥상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며 맥주와 함께 세 남자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세상의 빈틈을 보다.
A : 어디에서 왔나요?
P : 잠실에 있는 아파트에서 30년간 부모님과 살다가 올해 3월 보광동으로 이사왔어요. 독립한거죠
A : 독립을 결심한 이유는?
P : 처음에는 되게 장난스러웠어요.
이제 30살이니까. 어른이니까. 나만의 집, 공간이 있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동네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각박하게 맞추어진 세상에서 ‘빈틈’을 본 느낌?
현대사회에선 모든 것이 딱!딱!딱!딱!딱! 짜여져 있잖아요. 그게 너무 싫었거든요.
저는 강남에 살아 왔기 때문에 꽤 각박하게 살았어요.
몇 시에 이거 끝나면 저거하고, 저거하고 나면 또 다른거 해야 하고….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하면서 빡빡하게 살았었어요. 그래서 학생 때 어머니랑 마찰도 있었고요.
그런 거 한번 깨보는거! 그걸 너무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걸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첫 단계, 첫 계단이 바로 이집인 거에요.
요즘 일부러 밤에 불 켜놓고 자고…어머니는 불켜놓고 자는 거 되게 싫어 하셨거든요.
일부러 밤새 노래 틀어 놓고 만화책 보다가 자고…
A : ㅋㅋㅋ 이제서야 반항을 제대로 하는구나!! ㅋㅋㅋ
K : 아~너무 소심한 반항이야…ㅋㅋㅋ
P : 아~너무 행복한거에요~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게~
아무튼 요즘 이 세상의 빈틈을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A : 집을 고르는 중요한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P : 이건 좀… 부끄러운데… 클럽에서 부터의 거리?
A,K : 캬캬캬캬캬!!!!!!!!!!!
P : 이태원 자체가 핫 플레이스기도 하지만,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가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신나게 놀다가 걸어 집으로 올 수 있는 거리? 물론 옥상있는 집에서 놀아볼 생각도 있었고요.
K : 집을 고르는 신선한 기준이다~껄껄~~~
A : 자주 가는 클럽은 어디에요?
P : C클럽에 주로 가요. 한달에 두 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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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살어리랏다.
– P가 옥상에서 그린 ‘우리’동네
A : 집이 이태원이 되어서 좋은 것이 그런 점?
P : 그런 부분도 있지만…. 그것보다 우선 혼자살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주민?들과 같이 살고 싶었어요.
아파트에서 살면 이웃이 누군지를 몰라요. 바로 옆집도 모르고.
그게 되게 싫었어요. 그래서 이사 오자 마자 이웃에게 떡 돌리고 인사하고 이야기 하고 그랬어요.
여기는 좋은게 동네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보통 서울사람은 ‘동네’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제 경우를 봐도 ‘우리’라는 개념이 학교친구들이지 동네친구들은 없어요.
K :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가?
A : 아파트도 그 단지 안에서는 동네 같은 느낌이 없나요?
P : 옛날 아파트는 모르겠는데 요즘 아파트는 놀데가 없어요.
물론 학생들도 다 학원 가있고….
그래서 ‘동네’라는게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동네’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더라구요.
아무도 몰라도 왠지 소속감도 들고…ㅋㅋㅋ
A : 지나가는 젊은 사람보면 왠지 반갑고. ㅋㅋㅋ
P : 맞아요. 인사하면 왠지 받아줄거 같고~ ㅋㅋㅋ 저는 두세번 마주치면 인사하거든요.
A : ㅋㅋㅋ P는 진짜 붙임성 좋은거 같어요 ~
한번은 내가 친구랑 보광초등학교 앞에서 만나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희한하게 그날따라 아는 사람이 계속 지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 한테 계속 인사를 한거야.
“안녕하세요” “어디가시나봐요” “식사 잘하세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놀란거에요. 이 동네 도대체 뭐냐고 뭐 이런데가 다 있냐고. ㅋㅋㅋ
P : 맞아요. 여긴 참 매력있는 곳인거 같아요.
이 동네는 사람들이 사는게 보이잖아요. 그게 참 좋은거 같아요.
여기 옆집 아저씨 같은 경우에는 고물을 엄청 모으세요. 근데 옥상 보면 테마별로 줄을 세워놨어요. 고철로 파시나 봐요.
A : 남의 삶이 ‘조금은’ 얼핏 유추할 정도로 보인다는게, 알게 모르게 친밀감도 주는거 같기도 해요.
궁금해 지기도 하고. 여기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것 같아 재미도 있고.
K : 동네 산책도 가끔 해요?
P : 처음에 여기 왔을 땐 7시 마다 일어나서 구석구석 돌아다녔어요. 이쪽 언덕은 다 가본거 같아요.
K : 진짜 다가봤어? 난 아직도 안가본데가 많던데?
P : 좀 계획적으로 갔어요. 처음에는 무조건 오른쪽. 그다음에는 두 번째에서 오른쪽. 뭐 그런식으로.ㅋㅋㅋ
A.K : 캬캬캬캬캬!!!
A : 얼마동안이나?
P : 약 한달 동안요. 반대쪽은 출근길이라 한번은 이쪽, 한번은 저쪽으로, 그렇게 출근해요.
-그는 가끔 이렇게 옥상에서 동네를 바라본다.
A : 이 동네의 매력이 뭔거 같아요?
P : 얼마전에 중동이랑 축구 했잖아요?
근데 동네사람이 축구 하는거 같더라구요. 왠지 저 사람 길 다니면서 본거 같고…
아무튼 여기는 서울 같지 않고, 한국 같지 않아서 좋은 거 같아요.
A : 매일매일 여행하는 느낌?
P : 정말 여기 이사오고 한 달 동안은 매일매일 여행 다니는 기분이였어요.
출근길도 여행하는 길 같고, 퇴근길도 여행하는 길 같고, 집에 오면 펜션 놀러온 느낌?
A, K : 캬~
P : 그런데 사실 제가 이런 동네 와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 이 동네 왔을 때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어?’ 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좀 안타깝게 봤어요. 다른 집 가보면 벽에 온통 곰팡이 쓸어있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외로 덤덤하게 살고 있고…
그래서 내가 ‘돈 안드는 디테일을 개발해서 이 사람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고민 엄청했어요.
A : 그래서 집을 이렇게 수리했구나…
P : 네. 근데 일단 벽지는 안됨. 벽지는 물스며 들어서 곰팡이 쓰니까. 그래서 벽지 안드는 방법을 찾다가…
A : 그게 저 폴리카보네이트?
P : 네.
A : 이번 겨울에 꼭 단열 성능이 입증되길 바래요.
여기서 잠깐!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이집의 탄생 스토리를 읊어보자.
작년 9월 이태원 가정집 이야기(A와 K의 서식지) 옥상에서 9월 생일자 파티를 하였다.
당시 한 10명 정도 오기로 했었는데 정작 그중에서 온 사람은 1명.
그런데 이런 파티가 있는지 모르고 그냥 놀러온 K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를 데려왔고 그 또 다른 친구가 P군에게 급 번개를 때려
P군이 이태원 가정집 옥상에 오게 되었다. 그것이 A와 K와 P의 첫 만남이였다.
처음부터 그의 포스는 범상치 않았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물론 던지는 언어 하나하나까지…
그는 이태원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올해 3월 P군은 이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심
약 10군데의 집을 본 후 지금의 집으로 결정하였다.
원래 이집의 전세가격은 3천만원
그러나 집은 너무 허술했고
온 벽지에 심하게 곰팡이가 쓸어있었다.
P군도 살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 다른 집을 알아봤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가용한 금액과 맞아 떨어지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P군은 자신의 건축 포트폴리오를 들고 지금의 집주인을 찾아갔다.
“내가 건축하는 사람이니 이 집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고쳐놓겠소!”라고 딜을 던졌다.
결국 전세 값을 대폭 낮춰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아~ 역시 이태원 1% 매력남이다.
그 후로 한 달반 동안 그는 이 집을 고쳐나갔다.
단열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꾸밀지,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민 하고
자신이 일하는 공사현장과 주변에 버려진? 것들을 수집하여
친구들과 함께 집을 집답게 고쳐나갔다.
http://www.youtube.com/watch?v=pT59wyN_6Ec
위 링크를 열으면 이 집의 공사과정을 볼 수 있다.
P군과 함께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눠봤다.
내 집을 고치다.
-집을 고치기전 상태. 온 벽에 곰팡이가 쓸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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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당시 P가 그린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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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잘해놓고 산다. 깔끔하게 해놓고 사네~
(벽을 보며) 어? 여기 카펫타일을 붙였네?
P : 인테리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공사현장에 쓰려고 이걸 수입해 왔데요.
근데 주인이 보더니 “아….난 초록색 싫은데…”라고 했데요.
그래서 버려질 운명이라길래, “그럼 나줘!” 그랬죠.
장당 팔 만원 짜리래요.
A : 오? 이 모듈 한 장에? 대박! 몇 십만원 건졌네
P : 그렇쵸 ㅋㅋㅋ
-집 수리 당시 카펫 타일이 붙여진 벽면
A : 어? 이건 폴리카보네이트네? 이 뒤에는 뭐에요?
P : 이게 가건물이잖아요. 샌드위치 패널로 벽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단열도 걱정이 되고 벽지는 싫고 해서 뽁뽁이 붙이고 폴리카보네이트를 붙이기로 했죠
77(스프레이 풀)로 뽁뽁이 겹쳐서 붙이고 전선 몰딩에 피스 박아서 뽁뽁이를 고정한 다음, 찍찍이 있는 몰딩 부품을 덧씌워서 폴리카보네이트를 붙였어요. 처음에는 폴리카보네이트도 피스로 박았는데 너무 보기 싫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거였어요
A : 오…대박 아이디어다. 깔끔하네
P : 근데 여름이 되니까 이게 팽창해서 뜨더라구요
그거 생각해서 약간 띄웠어야 했나봐요.
– 폴리카보네이트 붙이기 전 뽁뽁이와 전선몰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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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후 벽면. 너무 예쁘다. 자전거 말고 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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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조명이건 뭐에요? 예쁘다~
P : 머핀컵(종이) 붙여서 만들었어요.
A : 이거 개인 아이디어??
P : 아뇨 이거 어떤 미국인 블로그에서 보고 따라했어요
A : 예쁘네~
-머핀컵을 이용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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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오~ 이 책상 상판이 문짝이네?
P : 이건 회사에서 공사하는 현장이 있었어요. 근데 허물기 전에 집이 꽤 비싼 집이였어요.
그래서 거기 버리는 것들 가져왔어요. 이 문짝도 거기서 가져왔고, 밖에 테이블 만든 상판도 그 건물 다용도실 발판이고요.
이것도 옷걸이로 쓰려고 가져왔는데 사람들이 와인셀러 라고 하더라구요.
A : 작업실 바닥에 시멘트 블록을 깔았네? 이건 왜 그랬어요?
P : 우리집을 보면…현관이 없어요. 근데 난 현관이 필요한데…..
그래서 문있는 쪽에 단차이를 줘서 작업실 단 아래는 현관으로 쓰고 단 위로는 내 작업공간으로 쓸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손님들 오면 신발 안 벗고도 앉아서 이야기 할 수 있고 작업실 책상을 이용해 Bar가 되기도 하고요.
-P가 시멘트 블럭으로 만들어낸 단차있는 현관, 그리고 문짝 책상상판이 있는 작업실
A : 야~ 이 카페트 예쁘다.
P : 친구네 집에 살던 외국인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갔는데 두고 간게 많았어요. 그래서 이 카페트 두 개랑 홈시어터 들고 왔어요.
A : 오 이 홈시어터도?
P : 여기 있는 것들 대부분이 누가 준것들이에요. 페이스북에서 떠드니까 사람들이 도와주더라고요. “야~ 나 이거이거 필요한데!!!!누구 없어?” 라고 올리니 돌아 돌아서 필요한 것들이 얻어지더라구요.
A : 페친이 많아요?
P : 한…2~300명?
A : 그렇게 많진 않네? 알짜배기 친구들을 뒀구먼!
P군의 책상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집모양의 명함꽂이가 있었다.
P군은 현재 부업으로 이태원 우사단 마을에서 열리는 ‘계단장’에서 계단과 집모양의 콘크리트 소품을 판매하고 있다.
-계단장의 계단
-레고와 콘크리트 집과 어항
https://www.facebook.com/wosadan
위의 링크를 따라가면 이태원 우사단 마을 계단장에 대한 소식을 볼 수 있다.
A : 어쩌다 이걸 만들 생각을 했어요?
P : 건축하는 사람들 중 정작 콘크리트 진짜로 만져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그래서 그림만 그리지 말고 콘크리트로 뭐라도 만들어봐야 겠다 싶었어요.
젤 쉽게 생긴 모양인 심플한 박공지붕집을 우선 만들었어요.
만들고 보니 이거 예뻐서 팔리겠는데? 싶었어요. 그런데 용도가 있어야 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위에 홈을 파서 책상위에 명함이나 사진 꽃아 둘 수 있는 용도로 만들었어요.
A : 가계에 도움이 되요?
P : 네. 이거 팔아서 농구화도 사고 집 수리하는 비용도 벌었어요.
A : 집을 이렇게 꾸미는데 돈이 얼마정도 들었어요?
P : 재료비는 얼마 안들었어요. 그런데 인부 안쓰고 친구들 불러서 작업했는데, 친구들이 오면 꼭 소고기를 먹고 가요. 고기 사주고 술 사주고 해서 결국 그냥 인건비보다 더 들었어요.
A : 낄낄낄~
P : 만약 술 안먹이고 밥 한끼로 때웠으면 인부아저씨들 비용 반 정도 들었을 듯.
-이렇게 그는 친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배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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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대략 재료비는 얼마나 들었어요?
P : 아…..조금 조금씩 사서 잘은 모르겠는데….
바닥이랑 벽에 깔은 강마루가 7~8만원.
벽에다 페인트를 칠했는데 이게 결로방지 페인트라 좀 비쌌어요
한통에 4만원, 그래서 10만원 정도?
바닥은 시멘트 블록 값은 500원? 인가 얼마 안하는데 운반비가 비쌌어요. 10만원?
A : ㅋㅋㅋ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P : 쫄대는 얼마 안하고 폴리카보네이트도 얼마 안하고
다 해서 대략 50만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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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군의 책상에는 레고 아키텍처 시리즈 중 하나인 빌라사보아(villa savoye)가 놓여 있었다.
http://architecture.lego.com/ko-kr/products/architect/villa-savoye/
그리고 그 뒤에는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녹조 낀 어항이 놓여있었다.
그 어항에 복어를 키웠었고 이 레고 빌라사보아도 어항 속에 넣어 장식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복어가 다 죽었고, 빌라사보아는 밖에 꺼내 두었다.
– 복어를 키우기전 어항속에 넣어둔 레고 빌라사보아 어감도
A : 레고 좋아하나 봐요? 빌라사보아네. 이번에 아키텍처 스튜디오 나왔다던데?
P : 나중에 세일하면 사려구요. 좀 지나면 할인하니까.
블랙 프라이데이 같은 때는 50% 까지 할인 된데요
A : 오~50%나?
P : 근데 이거(빌라사보아) 실망이였어요
클 줄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아서 실망했어요
A : 아~ 작아서~
P : 그리고 이게 내 복어 다 죽였어요.
A : 엉?? 이게 복어를 죽여요?? 플라스틱 독성 때문인가?
P : 아뇨. 복어는 똥을 자주 치워줘야 하는데, 이 레고 바닥에 복어 똥이 숨겨져 있었던 거에요.
매일 보이는 부분만 치워서 이 밑에 복어 똥이 모여있는 줄 몰랐던 거죠.
A : 이게 복어 똥을 가렸네…나쁜 놈이네. 그래서 복어가 죽었구나.
P : 키울 때는 이 레고 빌라 사보아 필로티(pilotis-1층 부분에 기둥으로 띄워진 부분)에 복어가 왔다 갔다 했어요.
그거 보면 진짜 엄청 기분 좋았는데….
A : 오오 멋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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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나와서 그의 침실로 갔다. 모든 물건이 가지런히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뭔가 그만의 독특한 감각이 배어있다.
-P군의 침실
A : (책장을 보며)우와~ 원피스네? 샀어요?
(사실 개인적으론 P군의 사는 모습을 보면 원피스가 떠오른다. 그의 똘끼는 뭔가 허황되어 보이면서도 바람직해 보이거든.)
P : 아뇨. 친구가 줬어요. 친구들이 가끔 “야! 이거 너희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라고 하면서 뭔가를 막 던져줘요.
A : 캬~ 인복이 타고났구먼.
A : 저 빨간 건 양산? 써봤어요?
P : 선물 받은건데, 딱 한번 써봤어요. 근데 낯 뜨거워 더는 못쓰고 다니겠더라구요 ㅋ
A : 이불도 직접고른거 같에. 딱 P스타일인데?
P : 이건 동대문 가서 샀어요.
– 침대는 위 그림과 같이 접어 올릴 수 있다. 이것도 P군 자체 제작.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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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이집에서 불편한건 없었어요?
P : 하나씩 고쳐나가고 있어요. 처음 왔을 때 수압이 약해서 앉아서 샤워했거든요.
하루는 너무 서러운 거에요. 쭈그리고 앉아 그러고 있으니까….
그래서 주인아주머니한테 전활했죠.
“제 키가 186인데, 일어서면 수압이 약해서 물이 안 나온다. 어떻게 안 되겠느냐.” 그랬죠.
K : ㅋㅋㅋ 키가 186이라서…ㅋㅋㅋ
P : 그리고 일주일 뒤에 수압펌프를 달아 주시더라구요.ㅎㅎㅎ
K : 우리집은 정말 갖은 노력 끝에 A가 수자원 공사에 연락해서, 누수된 곳 찾아내서, 쓸 수 있는 최소 수압을 겨우 만들었는데.
그래서 아직도 아랫집에서 물 쓰면 물이 쫄쫄쫄…세탁기 돌리면 샤워 못하고…ㅋㅋㅋ
(보광동 같이 낙후된 지역은 수자원 공사에 문의하면 누수여부와 위치를 무료로 점검해 준다.)
A : 혹시 이 건물 건축물대장 한 번 때봤어요?
P : 네 92년도에 지어졌더라고요.
K : 생각보다 얼마 안되었네? 우리집은 언제 지어졌어?
A : 71년도.
P : 제가 살던 아파트는 74년도에 지어졌어요. 거의 40년이 되었죠.
근데 여기보다 훨씬 깨끗하고 훨씬 좋아요. 그 차이는 물론 공사품질 같은 것도 있겠지만,
사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한 거 같아요. 거긴 집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좀 있는데. 여긴 ”살다가 빨리 나가야지!” 생각하니까.
가끔 동네 어르신들하고 이야기하는데. 여기로 이사왔다 그러면 “아 왜 젊은 사람이 여기 이사왔어~!” 그러시더라구요.
여기 대부분의 사람은 빨리 돈벌어서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래요.
A : 이 집에 더 고치고 싶은게 있어요?
P : 네. 지금 부모님 집에 풀장을 사다 놨어요. 풀장 튜브를 설치하고
아시바로 구조물을 만든 다음, 공사장에 쓰는 호루 있잖아요. 그걸 연결하고, 호스로 물을 빼서,
‘미끄럼틀’ 만들려구요!
A : 미끄럼틀??ㅋㅋㅋ
K : 캬캬캬캬캬!
P : 근데 올해는 너무 바빴고, 이젠 여름도 다가서 내년에나 만들려구요.
K : 아깝다. 올해 그걸 못보다니!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옥상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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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라이프 in Anything can happen in my place
-옥상에서 텐트치고, 이렇게도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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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아~ 좋다~
P : 옥상에 이러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능성이 열려있는?
A : 그래서 집 이름이 Anything can happen in my place?
P : 네. 그래서 좋아요. 우리집 와서 눈 맞아서 사귄 친구들도 있어요. 그럴 때 너무 신나요~
A : 오~정말?
K : 몇 커플?
P : 한 커플요.
A : 여기 자주 놀러 와야겠다.ㅋㅋㅋ
K : 우리 집은 아직 그런 일은 없었는데..,잉…부럽다.
A : 손님들 많이 와요? 부르면 오는 건가?
P : 친구가 “갈께!” 하면 “어~그래 와~” 뭐 그렇게 와요.ㅋㅋㅋ
A : 근래에 항상 사람들이 놀러온 거 같은데?
P : 거의 이틀에 한번씩?
그래서 하루는 밑에 집에서 아저씨가 올라와서 “이제 그만하지?!!”그러시는 거에요. 그래서 무조건 빌었죠.
A : ㅋㅋㅋ 이웃에게 조공을 좀 바치거나 했어요?
P : 친구들이 집들이 파티하니까 휴지를 많이 가져다 줬어요.
그래서 휴지랑 떡이랑 돌렸죠. 그걸로 3개월 버틴 거 같아요. 이제 약발 다 된 거 같아요.
K : 한 번 더 돌려야겠네. 파티 한 번 더 해야겠다. 사람들이 선물 좀 사오게
A : 파티 한번 기획해 봐요~ㅋㅋㅋ
P: 우리 옛날에 홍대 MB랑 할렘처럼 한번 해볼래요? (우리라 함은 이태원 가정집 이야기와 Anything can happen)
K : 아~ 두 옥상에서 동시에 파티를 하고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P : 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이대가 나눠지겠죠. 여기는 20대, 형들 옥상에는 그 이상. ㅋㅋㅋ
A : 그럼 난 여기 있어야겠다~ㅋㅋㅋ
-P의 옥상 텃밭
A : 옥상에 뭐 심은 것도 많쵸?
P : 깻잎, 상추, 치커리, 방울토마토, 참외, 담쟁이 이렇게 있어요. 깻잎, 상추, 치커리는 다 따먹었고.
요즘은 참외랑, 방울토마토 따 먹어요. 사람들도 엄청 좋아하더라구요. 고기 구워먹을 때 상추 바로 따서 가져오면.
A : 맞어. 맞어. 맞어.ㅋㅋㅋ
K : 이제 상추키우던데다가 배추랑 무 심으면 되겠네.
A : 저 지붕에 있는 게 담쟁이?
P : 네. 담쟁이가 타고 올라는 갈줄 알았는데 재네들은 내려오는 애들이라고요. 그래서 저기에 올려뒀어요
A : 저 옆에 있는 봉은 뭐지? 원래 있던건가?
K : 주인 몰래 빨간 깃발 달아요.ㅋㅋㅋ
P : 재개발 반대한다고요? 안 그래도 요즘 해적깃발 만들고 있어요. 저기다 달려고.
A : 해적깃발? 원피스? 루피?
P.K : ㅋㅋㅋㅋ
– 보광동 일대에는 위의 사진같이 붉은 깃발을 달아서 재개발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사진은 이슬람사원에서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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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A : 이 동네 재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P : 되게 반대합니다.
A : 왜요?
P : 좋잖아요. 이런 삶이..저는 감성적인 편인데…
이 동네를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가 들어오는게 아니라
이 상태에서 조금씩 좋아져서 살만한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K가 전에 말한 것처럼 이 동네에 필요한 소방도로 내는 정도의 개발,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으로…
우사단 계단장 참여하게 된 것도 그런거였어요.
계단장을 열게된 취지가 이 동네 슬럼화를 막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문구 보자마자 바로 참여했죠.
K : 근데 P도 알겠지만, A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여기에 살긴 하지만, 아직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 마을을 바라보는 것 같테.
실제 주민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과는 괴리감이 있는 것 같어.
P : 서울시의 과도기 인 것 같아요.
집은 내 삶의 때가 계속해서 묻어나는 곳인데….
제테크의 수단으로만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값은 계속 올라야 한다고 하고…
그런데 집값이 계속 오를 필요는 없잖아요? 이건 인식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집은 사는 ‘곳’인가 사는 ‘것’인가.
10년 정도 흘러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 이런 마을들도 잘 바뀌어 질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A : 근데 P는 아파트에 살았잖아요. 거기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집이 삶의 때가 계속해서 묻어나는 곳이라는…
아파트도 나름의 삶에 맞추어 고치고 쓰는게 있잖아요.
P : 우선 아파트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표가 ‘집값이 떨어지면 안 된다’거든요.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행동은 일단 ‘튀면’ 안 되요. 가령 어떤 집이 파티한고 하면 주민들의 바로 제재가 들어오죠.
저희 아파트가 롯데월드 근처였는데 거기 러시아 무용수들이 이사온 적이 있어요.
근데 한 달도 못살고 쫒겨났어요. 그 사람들은 매일 술 먹고 파티하는 문화거든요.
그런걸 보니까 아파트는 이런 동네와 아에 체계가 다른 곳 인거 같아요.
K : 그런데 내 생각에는 결국은 아파트나 이 동네나 똑 같은거 같어.
예를 들면, 이렇게 슬럼화 되는 곳에는 셋값이 싸서 예술하는 사람들이 들어오잖아.
처음에는 주민들이 이런 사람들을 반기지 않아. 그런데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오고 활성화 되면 좋아해 주지.
왜? 땅값이 오르니까. 결국 돈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어.
아파트에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제재하고 하는 것도, 여기가 아파트보다 정도가 덜하고 단합이 잘 안되었을 뿐,
결국 똑같은 것 같아.
P : 저도 좀 충격적이였는데, 여기 있는 분들 몇 분하고 이야기 나누어 보았어요.
그런데 대부분 여기 계속 살고 싶어 하시지 않더라구요.
빨리 돈 벌어서 나가고 싶어 하시더라구요.
K : 어떻게 보면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런 분들에겐 재개발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P : 그런데 여기가 그냥 살기 좋아지면…모르겠네요. 이건 너무 어려운 문제인거 같아요.
A : 아이러니인거 같어.
사람들이 자신의 도약, 발전을 위해 ‘서울’이라는 곳에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다들 있는 거잖아.
그런데 가진 돈은 부족하고….근데 싼값에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이 지역이 충당해 주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이런곳이 사라진다면 나같은 사람은 어디서 사나? 반지하로 가야하나?
떠나고 싶을 지언정…’이렇게 있을 곳’ 조차 없다면 엄청 슬픈 일 일거 같어.
그래서 이런 곳이 있는 건 엄청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싶어
아니면 우리가 어디서 이렇게 한강보면서 살 수 있겠어?
그리고 또 웃픈게 이 지역에 이렇게 싼 값에 살 수 있는 것이 재개발 덕이잖아.
재개발 된다니까 새로 건물 안 짓고 오래된 건물들만 있고, 그래서 셋값이 싸고.
그런데 재개발이 확정이 되면 우리는 떠나야 하고…
또 재개발이 취소되어도 그때부터 집들을 다시 짓거나 개보수 할테니, 셋값은 오르기 시작할테고…
결국 이곳에서 이 가격으로 살려면 여기에 살아가려면 재개발이 되지도, 안 되지도 않는 이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거지…
K : 나는 여기가 엄청 좋고, 엄청 마음에 들고, 사람들이 계속 살았으면 좋겠고, 재개발을 반대하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사는 사람들의 각자의 이익과 사는 사람들의 만족감의 접점을 찾는게 너무 어려운 거 같에.
그래서 여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 했을 때.
소극적이긴 하지만 이 장소를 기록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
A : 그래서 요즘 여기저기 사진찍으러 돌아다니는 구먼….
– 그날 수다의 흔적
밤늦게 까지 세남자의 수다는 계속 되었다.
여기에서 밝힐 수 없는 각종 개드립과 음담패설, 그리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어쨋거나 유쾌한 매력남 P와의 수다는 단언컨대 즐거웠다.
집에 돌아와서 녹취 파일을 정리하다 보니 글로 써낸 건 대화의 1/3정도 인 것 같다.
사실 인터뷰가 아니라 항상 옥상에서 나누던 즐거운 잡담과 수다였는듯 하다.
P에게서 메일이 왔다. 못한 말이 있다고.
P의 못다한 이 말로 그날의 대화를 끝내본다.
- 평소 제 집에 대해서 엄청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말하려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아까 횡설수설 했던거 같아요 ㅋㅋㅋㅋ
근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깜빡했었어요.
집에는 ‘혼’ 같은게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혼’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사랑과 관심을 줄때만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가끔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집 주인들의 정성이 묻어나는 집들이 보이거든요.
그런 집은 제게 감동을 줘요 ㅎㅎ 그 단적인 예가, 형들 집이요 ㅋㅋ
다들 자기 집을 사랑하고 잘 가꿨으면 좋겠어요 ㅎㅎ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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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클럽은 어딘가요?
써커스 입니다 ㅋㅋ
피터팬과 레몬테라스의 집들만보다가 진짜공간의 ‘네방을 보여줘’보면
나도 흐트러놓고 살아도 되겠다 싶고 뭔가 마음이 푸근하니 좋습니다.
집주인의 개성도 느껴지고 각각 방마다의 이야기가 있고요.
옥탑에서 이야기하는 사진들도 좋고. 종종 업뎃 기대합니다. ^^
오.. 찬별님. 감사합니다. 발빠른 업뎃은 힘들겠지만, 가늘고 길게 해보겠습니다. ㅋ…
와 재밌어요. 인근 주민이시네요. 제가 꿈꾸는 라이프들이라 더 흥미롭게 봤습니다. 여기 홈페이지 처음 와봤는데, 정말 맘에 드네요. 애독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