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어느날 갑자기 지인의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그의 부모, 자식잃은 부모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게 되었다.
그 부모는 본인의 핸드폰과 자식의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살아생전 자식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연락을 끊지 않았고, 주인 떠난 자식의 방은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정리하지 않고 보존했다. 생을 마감한 자식의 끈을 끝까지 놓지 못하셨고,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식을 잃는 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상상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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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본다.
세월호는 내 삶에서 큰 사건 중의 하나이다. 내 삶의 구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그 날 이후 마음 한 켠에 무거운 어둠이 자리 잡고 걷히지 않는다. 유가족들에 대해 여러 가지 나쁜 이야기들이 나돈다. 식당에서도 택시에서도… 그러 때마다 나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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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 임태주 시인 어머니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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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이고 정치적인 것 이전에 “그저 사람 사는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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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세월호 추모행사 중 광화문광장의 전시를 보았다.
아이들이 머물던 방, 주인이 떠난 “빈 방”
흔적 하나에도 사연이 있는, 아이의 수 백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방
방을 지우지 못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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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bc.com/news/in-pictures-3228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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