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동 조씨의 집

  1. 네 방을 보여줘

  2. 게스트하우스, 모두의 별장

  3. 동네의 변화

  4. 익숙한 교육과 디자인, 익숙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불편하다.

  5. 공공영역에서의 디자인

.

.

1. 네 방을 보여줘

입주자.. 조씨 30대 / 문화기획, 디자인(공간, 그래픽)
위치.. 3층 / 해방촌 다가구
규모.. 방3, 거실, 부엌, 화장실 + 테라스 / 58.67 ㎡ + 14.88 ㎡
임대료.. 월세 110만원/보증금 500만원 / J씨 부담 월세 38 보증금 100
동거인.. 2명 + 1견
거주기간.. 3년

조한비-cad

□ 굉장히 잘 꾸며놓고 사시네요.

좋아하는 편이어서.

 

□ 오기 전에 치우신 건 아니죠? 되게 정돈도 잘 되어있고.

좀 치웠어요. 잘 어지르고 잘 치우는 편이어서.

 

□ 이 자개장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빨간 자개 구하기 쉽지 않아요.

동묘에서 보고 사서 택시에 실어왔어요. 다른 거 사러 갔다가 충동구매한 거예요. 저도 처음 봤거든요. 되게 싸게 샀어요. 25,000원 주고 샀어요. 물건값을 되게 잘 깎아요. 원래 7만 원 불렀는데. 마감 직전이라.

 

□ 빈티지를 좋아하시나요?

좋아하긴 하는데 꼭 빈티지 좋아해서라기보다 취향은 쓸데없이 높은데 돈이 없으니까 그 정도에서 살 수 있는 걸 사면…. 이케아 같은 것만 사고 싶진 않고 그래서 만들거나 그런 식으로 사거나. 침대나 선반이나 테이블이 이런 거 다 만든 거거든요. 20살 때 목조주택 현장에서 목수 일을 잠깐 했었어요.

 

□ 저런 자개 문짝도 보기 드문 건데

길 가다가 서랍을 주워왔다가 서랍에서 떼서 저것만. 저 화병은 자개장 살 때 같이 산 거고. 다른 것들도 좀 사고. 산지 4~5년 됐어요.

.

P1180877-3

 

□ 들어오자마자 현관에서 자개를 신발장으로 쓰는 것을 보고 인상적이었어요.

저건 최근인데 올해 초에 누가 자개장 큰 걸 버렸더라고요. 완전 통째로 주워올 수는 없으니까 드라이버 들고 가서 문만 떼어왔어요. 신발은 개가 자꾸 물어뜯으니까 올려놓은 거고.

거실 창은 여름에는 거의 안 닫고 다 열어놓고 있거든요. 개방감이 좋은 편이에요. 걸리는 것 없이 남산이 다 보이니까.

 

□ 젊은 감각이에요. 잘해놓고 사시네요. 

집을 구할 때마다 고칠 걸 생각하고 들어가니까 하드웨어만 보고. 천장 같은 것도 디테일이 보존이 잘 되어있어서 그게 맘에 들었어요. 이 동네에서 방 3개면 월 80만 원에서 시작해서 월 110만 원이면 제일 비싼 거였는데.

 

□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3년 정도 됐어요.

 

□ 고치는데 비용은…?

100만원도 안 썼는데 몇십만 원? 일단은 벽지는 새로 안 하고 흰색으로 페인트칠했고요. 잡부 써서 같이. 바닥 에폭시도장은 바닥은 직접 했으니까. 나머지는 가구 만들고 이런 건데. 집 전체를 한다기보다 제가 살 공간 방 위주로 했고. 방도 옷장하고 만들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책 같은 것도 저게 이사 온 상태 그대로니까. 정리를 좀 해야 보는데 책을 왜 이고 사나 모르겠어요. 저 상태로 있는 책은 볼 수가 없잖아요. 뭐하러 저거를 쥐고 살까. 이사할 때마다 책이 제일 문제인데 막상 한번 본 책은 다시 보지도 않는데. 인테리어도 아닌데 버리자니 좀 그렇고.

.

□ 공간을 셋이 사용할 때 불편한 거 없어요?

있죠. 다들 불안정한 시기여서.

 

□ 비슷한 계열의 일을 하세요?

한 친구는 침구류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시작했고, 한 분은 영상 하시는데 주로 JEEP 같은 아웃도어 관련 일을 하세요. 한 명이 여자 한 명이 남자.

 

□ 예전에 남자 둘과 집을 같이 사용했는데 변기가 한 개였어요. 다른 것은 다 괜찮았는데 변기 문제가 스트레스였어요.

여기는 오히려 남자들이 더 깨끗해서. 저는 3년 살았고, 두 명은 1년 조금 넘었고 한 명은 반년. 오래들 안 살더라고요.

.

P1180866-3

옷걸이에는 자주 입는 듯한 옷이 걸려 있고, 계절별로 잘 입지 않는 옷들은 침대 밑에 보관한다. 외투는 방문 틀에 봉을 끼워서 걸어놓았는데, 출입구 절반 정도가 옷으로 가려졌어도 여유있게 드나들 수 있었다.

 

□ 방 말고 공공영역에서도 각자의 공간이 구분된 것이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애매하게 자기 물건을 갖다놓는 정도.

 

P1180862-2

 

□ 저 진은 홀짝홀짝 마시는 용이에요?

아니요. 스피커 선을 감아두는 용이에요. 선이 길어서 도르래처럼. 마시는 용은 다 저 위에 있고. 술 많죠? 밖에서 술을 거의 안 마셔요. 일 때문에 마시는 것 아니면 거의 집에서 마셔요. 친구들이랑 마실 때도 거의 집에서 마시고 웬만하면 상황에 따라서 제대로 먹어야 되면 집에서 마시죠. 집이 술 먹기가 좋으니까 조명 끄고, 음악 틀고 프로젝터 틀고…

 

□ 조명도 만드신 거예요?

조광기가 달려있어요. 밝기조절 돼요.

 

□ 집 하나 지으시겠는데요.

.

.

2.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를 하다 보니까 숙박업은 특히나. 강화도에서 애매한 규모의 숙박업은 사업으로 만들기가 힘들더라고요. 규모가 안 나와요. 확장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정해져 있고 거기까지 가기도 쉽지 않아서 쇼룸으로 만드는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 안의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다 판다. 그러면 그게 혼자 만드는 거로는 턱도 없고 아예 생산라인도 돌아가 줘야 되는데 고민이죠. 어디까지 할 것인지. 그게…. 어떨지. 힘을 많이 줘야 하니까.

 

게스트하우스도 개조를 직접 다 했거든요. 구조만 빼고 거의 다 손댄. 이 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손을 좀 댔죠. 이층침대도 다 들어가야 했으니까. 어찌 됐든 장사를 해야 하는 곳이니까. 7월 오픈해서 8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주로 단체가 많고요. 애초에 공간 설계할 때부터 OO은대학에서 1년에 한 번씩 워크숍을 가는 데 장소가 좋은 데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1차로 대상을 뒀어요. 1~2일 정도 묶으면서 쉬고 일하고 놀고 복합적으로 다 되는 곳이 없으니까. 단체숙박객은 거의 매 주말마다 있는데 여행자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주는 쪽으로도 같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정상화가 힘드니까 그쪽을 강화해야죠. 강화도가 제주도처럼 단독여행자가 여행하는 위치나 문화가 아니어서 그게 좀 고민이에요. 펜션이 맞을 수도 있겠다. 가족단위 주로 커플들이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가거나 할 때 장기로 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OO은대학이 지역활동을 강화에서 3~4년 했었어요. 이 공간을 얻어서 쓰다가 빠지면서 계약을 조기종료를 할지 다른 식으로 운영할지 여러 논의를 하다가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진 거죠. 애정이 많이 가면서 공간이 있으면 몸이 가야 하고, 이게 수익이 그 이상으로 나와주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드니까 생각이 많죠.

 

공간은 생각한 대로 방향은 잡았고 디테일들 채워가면서 하면, 인터넷에 강화도에 펜션 쳤을 때 첫 번째 나오는 곳에 여기다 그러면 숙박업으로 안정을 찾을 텐데, 시골에서 숙박이라는 것은 귀촌한 사람들이 살면서 농사지으면서 하는 건데 저희는 그런 게 아니니까요.

 

일단 마니산이 근처에 있고, 그것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앞이 들판이에요. 논하고 길들하고 산이 겹쳐있는 풍경이고, 창문은 미닫이로 크니까 그 프레임으로 들이 들어오거든요. 다 덜어내고 풍경이 최대한 들어오게 고쳤어요. 뒤가 동산이라서 날씨 좋을 때 열어놓으면 나무들이 풍경으로 들어오고.

한옥 모양새로 지어놓은 집이라서 뒷벽을 좀 더 털어서 뒤뜰이 들어오도록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어요.

 

모두의 별장

http://foryourcomfort.wix.com/mobyul

Untitled-1

.

.

3. 동네의 변화

옛날에는 삼청동 살았거든요. 2007년쯤? 70년 된 집을 구해서 들어갔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집도 지도 훨씬 낡았고 아무래도 나이가 어릴 때 살다 보니까 물건 많고 그런 게 좋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청소하기 귀찮아서.

 

□ 저는 2008년까지 사무실이 삼청동에 있었어요. 2007년부터 사람이 되게 많아졌잖아요.

네 맞아요. 커피프린스 때부터 딱 기점이. 인사동에서 야금야금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다가 커피프린스가 로케이션을 북촌 쪽으로 하면서 드라마가 뜨니까 붐이, 뜰만 한 시기에 TV에 나왔고 그때부터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고 인사동도 상권이 더는 없으니까 어딘가로 확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이 맞은 거죠.

 

□ 그때 집은 서교동이었고 사무실이 삼청동이었거든요. 2005년부터였나? 삼청동에서 문제가 생기면 편의점이든 뭐든 인프라가 다 인사동 안국역에 있으니까 휴대전화 충전기 안 가져오면 안국역까지 내려가야 했는데.

네 맞아요. 저도 담배사려면 안국역까지 나가야 했어요.

 

□ 퇴근할 때 보면 북촌 일대는 다 새캄한데 집에 갈 때 홍대쯤에서 버스에서 내리면 그땐 막 불야성. 극과 극 상태로 지냈는데 너무 시끄러워지니까 5년 전에 이사를 왔거든요. 경리단으로. 올해 또 경리단이 무한도전에 누가 나왔다느니…

저는 약간 뜰 때쯤 3년 전에 왔으니까 그때쯤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항상 이런 동네만 옮겨 살게 되니까.

 

□ 맞아요. 좀 조용한데 찾아서 들어왔는데도 이렇게 되고.

방법은 완전 뜰 일 없는 완전 조용하기만 한데만 가는 건데 그건 재미가 없으니까. 약간 뭔가가 있는 곳으로 가는 습성이. 뉴욕 쪽은 예술가들이 들어가면 거기만 투자한다고.

 

□ 농담으로 너 가는 데만 투자하면 되겠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투자하는 경우가 생겼고, 경리단 뜨는 것만 봐도 순환주기가 완전히 절반으로 줄었죠. 홍대가 뜨는데 10년 걸렀다고 하면 삼청동은 5년 걸렸고 경리단은 2~3년? 연남동은 홍대에서 연장된 거니까 확장된 개념인 것 같고. 경리단도 뭐 이태원 쪽이긴 한데. 아는 거죠. 부동산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세입자들도 약은 사람들은 아니까 들어가서 장사할 생각은 안 하고 뜰만 한 동네에 권리금 없이 들어가서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권리금 받고 나가는 부동산 놀이를 다들 하니까.

 

□ 권리금이 없어져야 하는데

그러게요.

.

.

4. 익숙한 교육과 디자인

익숙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불편하다.

□ 진짜공간 인터뷰는 어떻게 신청하게 되셨어요? 뭔가 기대되는 것이 있었나요?

재밌게 종종 보던 것이었는데 인터뷰를 한다길래 어떤 분이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저도 비슷한 보통의 공간. 저는 아파트멘토에 가까웠어요. 아시죠? 일상의 날 것을 취재한다기보다 좀 왜 이렇게 한국의 일상은 아름다울 수 없는가? 유럽에 갔을 때는 ‘문화적 수준과 돈 이런 게 중요하지.’ 그랬는데 동남아에 갔을 때는 ‘개뿔 안 중요한데.’ 그 토양과 그 나라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게 한 달에 10만 원 버는데도 있는 게 한국에는 없는. 대체 이유가 뭔가? 몇몇 사람들이 그런 걸 가지고 있잖아요.

보통의 사람들도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거, 자기 삶에서 나름의 풍요와 스타일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 장판과 형광등 아래에 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걸 해보고 싶었거든요. 라이프스타일 같은.

아버지가 건축하셔서 노이로제가 비슷한 게 있는데. 건축은 항상 뭔가 커요. 근본부터 해야 하는. 땅부터 역사부터 언제 그걸 다. 나는 여기서 당장 살아야 되는데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그래픽이나 패션 하는 사람들은 가볍게 잘하는데 건축하는 사람들은 너무 무겁게 하느라 변하는 속도보다 훨씬 늦게 가니까 그게 또 힘이기도 하면서. 진짜 공간 봤을 때 그런 게 재밌었고. 진짜 충동쪽으로. 페이스북에서 어쩌다가 보고 엇! 게스트하우스도 홍보도 좀 해야 되고.

진짜공간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 진짜공간에 대한 글을 써놨는데, 잡지가 다 깨끗한 공간만 나오잖아요. 사람물건도 없는 공간들. 거기에 대한 내가 사는 친구네 집에 가면 이렇지 않은데 상위 1% 집만 나오잖아요.

저도 옛날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약간 관점은 다르긴 했는데 처음 봤을 때 신기했죠. 진짜 하시는 분이 있구나.

 

□ 대학교에서 아카데믹한 건축을 배우다 보면 되게 유명한 건축가들의 공간을 보게 하죠. 서구의 3대 거장이 있는데 어쩌고, 건축잡지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의 건축을 가르쳐주고 좀 다른 거라면 사찰건축들을 보게 하는데 감흥이 없는 거예요. 어릴 땐 건축을 잘 몰라서 그 공간이 왜 좋은지를 못 느끼는 줄 알았어요. 달동네같이 생활이 쌓인 동네의 공간감이랑 건물들이 필요에 따라 덧붙여지잖아요. 그런 곳에서 더 느끼는 게 많았죠.

원래 저도 건축하려고 했거든요. 아버지가 건축가세요. 어렸을 때 알게 모르게 봤던 것들이 건축에 관련된 인문학들이었고. 세계 일주를 한번 했는데 1년 넘게. 일주까진 아니고 1/3주? 돌 때도 그런 생각으로 갔었어요. 정규과정을 바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 고등학교 때 주로 했던 것들이 철학이나 미학 관련된 것들이라.

 

□ 대안학교 나오셨어요?

네, 간디학교 나왔어요. 다 파다 보면 결국에는 가는 게 유럽밖에 없잖아요. 동양 쪽으로 가면 다 중국이고. 중국하고 유럽 두 개인데. 이게 궁금하더라고요. 일단 사람들이 유럽유럽 하는데 진짜 그들이 그런지. 그때 고등학교 때는 “탈식민 시대의 글읽기 삶읽기”라는 책이 있어요. 탈식민을 중심화두로 그걸 읽으면서 그 생각을 좀 했거든요. 유럽에 대해서 영화나 미디어로 알게 모르게 봐왔으니까. 학문도 그 정도의 흐름 속에서 식민화되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건축도 다 마찬가지니까 그런 걸 보고 싶어서 여행을 가고 싶었죠.

말씀하신 달동네를 생각했었던 게 건축가 없는 건축 같은 게 좀 있었거든요. 노르웨이의 베르겐이라는 도시가 있어요. 거기가 딱 부산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바다 바로 앞에 산들이 있고 집들이 앉혀있고 지형 생김새가 비슷하더라고요. 노르웨이 정도만 되도 수준이 여러 가지로 높은 나라니까 집들이나 건축의 생김새들이 완전히 다르죠. 땅을 이기려 하지 않으니까 달동네인데 질이 높은 거예요. 엄청나게 좋았거든요. 한국은 땅을 다 밀고 개발하는 식이라면 여기는 잘 지키면서 오래된 집들을 잘 최대한 지금의 삶에 맞게 하는 작업들을 하니까.

 

□ 저는 보통 우리가 유럽식 또는 영미권 관련된 교육을 받으니까 그런 의문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뭐 대단하게 학자적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달동네, 내가 딛고 서 있는 동네부터 관찰해보자 그것부터 시작한 것 같아요. 최대한 그런 건물들을 흉내 내려고 하는 거죠. 뱃기다보면 조금 더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초기 단계긴 하죠. 디자인 관련된 다른 학문도 다 마찬가지. 젊은 디자이너들도 자기 제품 디자인 하고 나면 제품명이나 기록들을 다 영어로 써놓는 것도 이상하고.

예 맞아요. 편하니까 약간 무임승차하는 느낌이죠. 그런 걸 보면 디자인 언어라는 것 자체가 서구 쪽에서 만들어진 거니까. 요새는 경향이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해요. 그래픽 쪽에서는 그래픽은 좀 가벼우니까. 패션 쪽에서도 달라지는 게 좀 보이고 여전히 주류는 그런 쪽이긴 한데. 자기 나름대로 의식을 가지고 변화하는 게 보이기도 하고.

 

□ 그 문화가 사실 되게 익숙해지긴 했어요. 익숙해졌는데 다시 자기 언어를 찾는 듯한 느낌. 미대 가기 위해서 했던 입시 미술이 익숙해졌는데 정작 미대가 서는 다시 자기 것 찾기 위해서 버리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 같은. 어떻게 보면 교육방법론 자체도 그쪽에서 만들어진 방식을 가져오니까.

체계적으로 하게 되면 어쩔 수 없는 한계 같기도 하고. 오히려 저는 반대로 해서 그쪽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거든요. 기본이 없으면 되게 힘든데 저는 항상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일하면서 독학하듯 혼자 하니까 뒤늦게 결국엔 그걸. 그걸 지우더라도 자기가 쓸 줄 아는 것은 중요한데 그거 없는 상태에서 하다 보면 한계가 빨리 찾아오니까 그런 게 있더라고요.

 

□ 같이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학원을 늦게 들어갔거든요. 실무하고 사회적인 경험들을 하고 대학원을 들어갔더니 어린 친구들과 함께 다닌 거에요. 그들은 경험은 없는데 책으로 익힌 것은 너무 많은 거예요. 생활이랑 책이랑 연결을 못 시키더라고요. 체화가 안 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특히나. 산토리니 갔을 때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유럽 다닐 때도 건축가들 건물을 중심으로 다녔으니까 21살 때 갔고 배경지식도 없고 일단 볼 수 있는 게 그런 건데 막상 감흥이 있는 것은 건물 덩어리 하나 딱 봤을 때가 아니라 거리 다닐 때 무의식적으로 감탄을 많이 하긴 했어요.

 

한국에서는 시각적으로 부조화가 아닌 상태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는데 삼청동에 산 것도 그런 이유가 컸어요. 제일 거슬리는 게 없는 동네.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원류 같은 거라서. 서구나 유럽이나 이런 쪽에서 최대한 벗어난 것에 주로 관심을 두고 찾다 보니까 삼청동에 살게 된 거였는데 유럽 같은 경우에는 그걸 너무 잘하니까. 시골동네를 가도 인포그래픽부터 도로표시판, 색 형태의 조화가 기본적으로 되어있으니까. 짜증도 나고 그러더라고요. 뭐야 이거.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그런 걸 계속 봐야 되니까 한국에서는 되게 애써서 찾아야 되는데 유럽에서는 널린 게 다 레퍼런스들인데 이걸 그냥 태어날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슈퍼 가서 물건을 사도 기본이 되어있는 곳에서 사는데 어떻게 이길 수나 있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디자이너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할까 싶기도 하고. 스위스는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디자이너가 할 일이 없다고 이미 너무 다 되어있고, 그래서 스위스가 싫다는 스위스 출신 디자이너도 많고. 에너지도 없고 어떤 면에선. 유럽 다니면서 그런 생각 많이 했는데 젊은 애들이 유난히 마약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왜 그럴까? 어떤 면에선 완성된 거죠 어떻게 보면 별로 할게 없는 거죠. 더 안 해도 충분하고 한국이랑 다르게.

 

그래픽 쪽 같은 경우에는 거의 다 문화예술계 작업을 하는 건 다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세련된 프레임을 다 만들어놓고, 거기다가 세련된 것을 하나씩 얹는 것 같은 느낌이. 막상 일반사람들은 그쪽에 접근을 잘 안 하니까. 그래서 그냥 디자인계나 예술계에서 그 사람들끼리 자기들끼리 공 주고받는 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예전부터 디자인 쪽으로 생각했던 것이 바우하우스를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직선과 담백함 딱 보면 저런 디자인이구나 명쾌한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러면서 저런 자개장을 사지만. 약간 뒤섞여있어요. 개화기나 그런 시대에 실제로 관심이 많기도 하고.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이 좀 있어요.

 

한국 같은 곳에 태어나서 나름 사회적 윤리의식이나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물건이나 뭐가 좋은지 알고 좋은 취향이 뭔지 알고.. 그런 거 다 이미 만들어진 게 내 것은 아니니까 부도덕한 것도 많고 차라리 그걸 모르면 죄책감이 없는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저걸 취해야만 일상적으로 만족이 되는 그런 상태에서 사는 게 다른 종류의 불안함인데 그런 게 개화기 지식인들 이상이나 이런 사람들 보면 딱 그런 거죠. 그러니까 다방이나 차리고 아편이나 피고 독립운동가들 지원한다고 애매하게 하고. 그런 느낌의. 바우하우스 같은 경우에는 공예처럼 있던 것을 그걸 아예 보통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질로 만들어버린 거니까. 생산라인을 통해서 그때 만들어진 모듈이 지금도 적용되고. 그런 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요 10대때도. 그때는 디자인을 할 거라 생각 못했는데 그때는 주로 글을 썼으니까 그런 공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도 생각하죠.

 

□ 개화기 때 모던걸 모던보이. 한국토양에서 정신없이 막 섞였던. 어떻게 보면 다시 찾아가려면 그쪽을 보는 것도 맞을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들어요.

건축도 뿌리나 이런 걸 고민하다 보면 생뚱맞잖아요. 한옥? 민속촌? 이런 거. 내 삶과 더 가까운 것은 남의 것들이지. 원래 이 땅에 있던 것들은 내 삶과 별로 상관이 없었고 난 아파트에 살았고. 아파트는 오히려 바우하우스의 4번째 복잡함 쪽에 가깝지 한옥하고 전혀 상관없는 거니까. 그런데 고작 한국성 하면 그런 전통 튀어나오니까. 그러면 상상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유럽에 가서 그런 생각 많이 했는데 얘네는 그냥 여기서 하니까. 영국 같은 곳도 골목에 저기 있는 교회가 1000년 됐고 하니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죠. 내가 살았던 게 그런 거니까. 그런데 한국처럼 맥이 단단하게 몇 번 끊긴 곳은 뿌리 자체가 한번 잘렸는데 끊겼는데 난 어차피 뿌리가 없는데 라고 상관없이 살던가 아니면은 상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게 그대로 이어져 왔다면 어떤 식으로 근대화가 됐을까 거기서 딱 실마리로 증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시대가 유일하게 개화기. 그런 식으로 다른 문물들이 처음에 수입됐을 때 전혀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들어왔을 때 그 땅에서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그걸 만나면서 복잡하게 살았던 거의 유일한 시대니까 그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 이런 것들을 보게 되고 아무래도 관심을 두게 되는 거죠.

 

□ 그게 단순히 복고 낭만 그런 걸 떠나서 그냥 어찌 됐든 나 스스로 해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그건 뭘 까라는 땡땡땡 의문이 계속 남아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단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가 그럼 헷갈려요 항상 그런 거 생각할 때마다 오리엔탈리즘 같은. 내가 그냥 이 나라 사람인데 좌식은 정말 불편해요. 안 맞더라고요. 어렸을 때 좌식생활을 했음에도 지금은 못 살겠고, 자개장을 볼 때도 약간 그런 관점. 뒤섞여 있죠.

 

□ 역사든 뭐든 한 분야를 파다 보면 다 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분야가 달라도 만나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단편적인 예는 얼마 전에 광저우에 갔다 왔어요. 부엌이 다 작은 거예요. 음식문화 연구하는 친구는 돌아다니면서 음식문화를 보는데 한국은 가족이 중요시되다 보니까 집에서 가족과 같이 밥을 먹는 문화가 중요하고 그렇다 보니 부엌이 중요하고 크다고.

그렇게 치면 한국은 너무 근본이 없는 거예요. 노란색 장판. 지금은 그런 움직임들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진짜 별로 없었고. 한국성이란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할 때 그나마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키치밖에 없었어요. 제가 보기에. 아주 키치적인 작업들 간판볼드한거 싸구려들 콜라주처럼 때려 박아서 한국의 날것. 그것도 저는 맞다고는 생각하는 데 보편적이니까.

 

빌딩 위에 갑자기 정자 올라가 있고, 빌라 입구에 그리스 동상 세워져 있고. 빌라 양식 보고 있으면 저건 그리스 로마 저건 일본에서 따왔는데 다 콘크리트네. 무국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게 날것이다. 인정 오케이. 너무 슬프잖아요. 결코, 아르답다고 말할 수 없는. 미학이라기보다는 위트를 찾는 거니까. 왜 이 나라에는 아름다운 게 없는 거야? 삼청동을 갔을 때 반가웠죠. 이 나라에 없진 않구나. 반가웠고.

 

제가 잘 갖춰놓고 살려고 하는 것도 그런 걸 굳이 의식하는 건 아니고. 농담으로 하는 이야긴데 제 존엄성은 아무래도 형광등하고 장판 사이에는 없는 것 같아서 삶이 괴로워요. 한 나라에서 흰색 형광등을 쓰는 비율과 문화적 성숙도 역사와의 관계성 이런 걸 연구해보면 좋겠다. 생각해봤죠. 경제와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유럽에서도 형광등을 많이 쓰는 곳은 동유럽 쪽, 동남아시아에서는 제 경험에서는 베트남이 가장 많았는데 언제든지 역사나 맥이 한번 끊긴 쪽에서 많이 써요. 제 감에서는. 형광등이 야만적인 조명이잖아요. 감춰주는 것 없이 낭만 하나 없이 다 보여주마. 전력효율이 가장 높고 쨍하게. 은근하게 비춰주거나 아름답게 하는 것 하나 없이 가장 싸고 가장 밝은 빛이란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관장하는 건데 그 빛을 다루는 방식이 폭력적이든 뭐든 느끼는 감이 없다는 거죠. 유럽 쪽에 잘 지켜지는 곳을 보면 집에서는 최소한 형광등을 보기 힘들죠. 기능적인 곳 외에는. 저는 안 되는 거예요. 형광등을 켜고 살 수가 없어요. 장판을 깔고 살기도 힘든 거예요. 장판을 깔려고 엄청나게 찾아봤거든요. 검은색 없나? 장판이란 게 PVC인데 프린팅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꼭 나무무늬를 따라 하든가 옛날 기름먹인 종이를 따라 하든가. 질감대로 솔리드의 칼라가 나오면 되는데 그게 더 훨씬 더 괜찮아질 텐데. 너무 내 기준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이 없으니까. 적당히 이용하고 사는 거예요. 고달파요. 만만하게 살진 않으니까.

 

□ 최근에 1인 가구 협동조합 설계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긴 타일을 깔았어요. PVC 타일. 점점 자기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많이 생겼죠.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라이프스타일을 팔아먹고 사는 거로도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이젠 점점 의미가 없어지겠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뭔지가 훨씬 중요해지니까 긴장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 신혼부부들도 집에 들어갈 때 고치고 들어가더라고요.

옛날이랑 다르죠. 전세니까 그냥 산다 그런 거보다. 괜찮은 변화예요. 단지 젊은 세대가 너무 힘이 빠진 시대라서.

 

□ 공간운영을 굉장히 잘하세요.

저의 집에서 혼자 쓰는 거야 뭐… 그런데 게스트하우스는 10여 명 자는 건데 한씩 해도 몇십만 원 쑥 나가잖아요. 다 돈이라서. 제 집의 물건 사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공간이 작잖아요. 이 정도 규모란 것은 공간이 작다 보니까 최적 안이 있는 거예요. 함숫값 찾는 것 같아요. 침대가 여기 말고는 밖에 갈 데가 없는. 공간이 크면 여백들을 둘 수가 있는데. 각각의 최적의 값이 있어요. 저 선반은 저 위치 아니면 안 돼요.

 

P1180857-2

.

.

5. 공공영역에서의 디자인

□ ‘OO은대학’에서는 계속 공간 쪽 일을 하시는 거예요?

공간작업이 따로 있진 않은 데 있는 사람에 따라서 작업을 맡기도 하고, 원래 하는 일은 기획이죠. 전략사업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활동가들의 네트워크? 조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느슨하고 커뮤니티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조직성이 있고. 그런 곳인데 저는 지역 활동가는 아니고 애초에 그런 타입은 아니고 주로 ‘OO은대학’에서 맡게 되는 공공영역의 전략사업들이나 기업연계사업이나 그런 걸 주로 맡았거든요. 공간 쪽은 원래 맡지 않았는데 지금 강화도의 풍물시장이라고 재래시장이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서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을 하고 있어요. 거기 디자인팀장이거든요. 그것 때문에 공간 관련 일들을 그때부터 많이 시작하게 됐어요.

 

막상 작업을 하다 보면 그런 욕구가 들죠. 시장 같은 거친 일상영역으로 가서 작업을 하다 보면 디자인이라는 게 기능이 90%. 디자인은 그냥 얹는 고명정도. 작업자로서는 어디 가서 이 작업했어요. 하기에는 좀 그렇고 포트폴리오라고 그러기도 좀 모호한데 기능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은데 어차피 하는 건 현수막 광고지 이런 게 많으니까. 하고 있다 보면 위기감이 들 때가 있고. 전 주로 그런 영역의 작업이 많으니까.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이 뭔가 통제 하려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또 너무 안 하면 내가 없는 거야.

도 닦는 것 같죠. 클라이언트의 필요성에 맞춰주는 것과 다른 부분이고.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그런 걸 생각하면 제가 하는 작업은 아직은 주로 기능적인 거니까. 이상의 것은 어렵죠.

 

□ 공공프로젝트 중에서 시장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죽을 것 같아요. 2년째 하고 있는데 뭐가 되게 힘든데, 힘든 게 정체가 뭔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사실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기능적으로 봤을 때 테크닉을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니고 그대로 만들라고 그러면 1분이면 만드는데 그걸 만드는 데 하루가 걸리는 거예요. 맥락 때문에. 쥐어짜듯 작업을 해도 뭔가…

 

이런걸 하고 있으면 갤러리전시 같은 영역의 일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게 사실 포트폴리오가 되잖아요. 최대한 세련되게 할 수 있으니까 제약 없이. 이건 뭐 다 볼드하고 색깔 쌔고 컬러사진 들어가고 쥐어짜듯 만들고. 축제한 번 하고 나면 버려지니까.

 

저는 전공자가 아니니까 관계에서 완전히 저는 아웃사이더라 디자인계라는 것에 속해본 적이 없으니까. 어떠어떻게 하다 보니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고,

여기 안에서 이런 것은 항상 필요하니까. 가치관이나 철학하고도 맞기 때문에 작업을 하지만, 아 요새가 진짜 고비예요.

 

□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셨잖아요.

그렇지는 않죠. 뭐. 누가 봤을 때는 그런 삶일 수도 있는데 한편으론 그렇고 한편으론 별로 선택권이 없고.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저는 대학교도 안 나왔거든요. 철학과 들어갔다가 중퇴했어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스펙이나 커리어나 정규과정에서의 그런 게 없는 거죠. 제가 뭘 하느냐에 따라서 생기는 거고. 그렇게 봤을 때 애초에 원래 기업에 취업할 생각은 아예 없었는데 지금은 미래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되고.

 

불 지르고 불 끄는 일인 데에 강한 편인데, 갑자기 막 해야 될 때, 수습해야 될 때 구원투수로 갑자기 해야 될 때 빠른 편이니까. 저도 그런 상황이 불편하지 않고. 그런데 뭔가 축적되는 것은 없는 것 같고 언제까지 이렇게 벼랑 끝에 항상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 수 있을까. 시장작업도 매번 기간이 하루 이틀이니까. 퀄리티가 항상 생각한 만큼 안 나오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불안해지죠. 내가 작정을 하면 과연 퀄리티를 낼 수나 있는 사람인가? 급한 작업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 나 스스로 위안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있고.

 

□ 그런 불안함은 나이가 50이 되어도 안 없어질 것 같아요. 몇 살이 되면 어느 정도는 되겠지. 이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올해 생각을 좀 정리해야 될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기업을 만들고 싶다 생각하고. 디자인 기획이 아니라 기업을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이고. 관변에 있는 일을 하다 보니 너무 불안정한 거예요. 정책이 바뀔 때마다 바람 불 때 흔들리는 것처럼 확확 흔들리고. 같이 있는 친구들 중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내가 못하더라도 저 친구들과 뭔가 함께해서 이 사회나 삶에 빚을 조금이라도 덜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도 부대찌개처럼 요리를 하다 보니까 아무리 해도 파워게임으로 누군가 들어와 버리면 확 밀려나 버리고. 이런 플랫폼이나 네트워크 조직의 기본적 특성 자체가 효율성 중심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저 같은 경우도 이런 생활을 계속하기에는 너무 속물이고 물질적 욕구 디자인 시각적 욕구가 한쪽에선 또 충족이 안 되고 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런걸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생각으로 좀 정리가 되긴 했는데..

 

□ 공공영역에서 부족한 것이 방금 말한 그 지점인 것 같아요. 시각적인 욕구를 버려야 한다는 압박? 사실은 있는 게 좋거든요.

저는 실제로 그런 역할인데 그걸 있게 하는 역할인데 저는 버려야 되게 되던데요. 어쩔 수가 없어요. 어디까지 욕구를 가질 것이냐의 문제인 거지 100% 충족시킬 수는 없고. 시장디자인과 똑같아요.

 

□ 적당한 사례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다른 시장들보다 마르쉐가 성공한 원인이 시각적으로 더 좋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공성도 물론 있지만, 시장에서 승부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마르쉐 같은 경우는 이제야 한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건데 그것도 한정된 판이긴 한 것 같아요. 저도 뭘 하면 그런 걸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재래시장을 해보면 압도되는 거예요 그 물량에. 마르쉐는 잘하는 소규모 팀들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소규모 팀들을 잘 꾸려주고 그런 정도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있고. 강원도에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한다는 것은 비슷한 톤을 낸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게임이고, 그런 걸 기다릴 틈이 없는 공공사업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딜레마가 있죠. 마르쉐 퀄리티를 낼 수는 없지만, 그거 자체를 가지고 이걸로 내가 사업적으로 성공시키겠다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지원이 없고. 그걸 계속 지키시잖아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한국에서 보편화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니까. 저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사실은 한다면 마르쉐 정도의 톤과 실력 이런 걸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디자인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쉽진 않죠.

 

□ 그들도 보면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주변사람들을 보면 뭔가 다 겹쳐서 일하고 있고.

한 가지 일만 해서 먹고사는 시대도 이미 지났고. 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정신분열 올 것 같아요.

 

□ 공간을 보면 관공서를 포함해서 공공의 공간에 대해서 영혼이 없는 공간인 거예요. 누구도 공간에 애정을 갔지 않아서. 모두의 공간이라는 것이 애매하더라고요. 시설관리과가 있지 공간매니저는 없잖아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청년 허브는 카페50이 들어가 있어서 공간에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행정부터 만들어야 하니까 공무원에서 그런 감각을 가진 사람이 없고 그런 감각을 가진 사람이 공무원이 될 리가 없고 딜레마죠. 한계가 있죠. 그게 레벨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면 사회의 질이 공공의 수준이 좀 올라갈 텐데. 공공의 수준이 가장 늦게 오니까. 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들어놔도 카페 가서 일을 하는 이유가 보통 카페가 훨씬 공간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코워킹스페이스는 영혼이 없는 느낌이 있죠. 카페만큼 공간에 애정을 갖고 가꾸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

.

한겨레 [매거진 esc] 네 방을 보여줘

연재가 1~2주씩 뒤로 밀리면서 순서대로 올리다보니 2014년 12월 인터뷰를 이제야 올리게 됐어요.  ㅡ.ㅡ

용산동 조씨의 집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96483.html

.

P1180880-2

.

Copyright © 2015. All Rights Reserved.

Share:

Author: JinzaSpace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