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숲세권 내품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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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 지상철 하부 도로 (사진@네이버 로드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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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 씨티 (사진@DC data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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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성수역은 지상철이다. 어두침침하고 어마어마한 구조물이 흡사 고담씨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한국이며 서울이다. 처음에 그것을 느낀 것은 바로 저 단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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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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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직관적인 조어라, 마치 저런 단어쯤은 내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듯 금세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뭐, 서울숲 주변을 돌아다니면 이 땅이 다 내 안마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기분만이라도 맛보게 해줄 것 같은 신선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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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만 안아보자…’는 명대사를 남긴 원빈이 요 숲세권에 집을 사셨다지. (대지면적 231㎡, 연면적 616㎡ 지상 4층짜리 소형 빌딩을 21억원에) 분위기에 힘입어 주변 건물 임대료와 건물값이 몇 배나 뛰었다. 주변 상권 월세가 눈 깜짝 하는 동안에 월 200에서 600으로 세 배는 족히 뛰었다는 증언을 들었고, 뭐 성동구에서 전국 최초로 ‘지역 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는 기사를 보았고, 건물주와 임차인 간 임대료 상승 담합을 막는 상생협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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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숲세권’에 감동받은 나는 이곳 주변의 찌라시를 눈여겨 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성수역에서 느린걸음으로 15분 거리에서 일을 하게 되어, 아침저녁으로 기둥들을 휘휘 잘도 보고 다녔다. 하루는 재밌는 것이 많은 것 같아서 퇴근길에 사진을 한번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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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상가, 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

급매. 매달 월세가 평~생 연금처럼 또박또박 지급

1억 투자로 월 순수익 130만원 꼬박꼬박 + 알파

10억 투자로 월 3000만원, 백만장자의 임대사업. 대표님 옮기셔야죠? 사모님 오래기다리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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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 탐난다. 꼬박꼬박, 또박또박. 언어 사용에 다시 한번 감동을 느낀다. 사진을 찍고 다니다보니 졸부 되고 싶은 마음, 대표님 사모님 되고 싶은 마음, 무노동임금 따박따박 챙겨먹고 싶은 마음이 한데 뭉쳐 무대리도 생각나고 미즈사랑도 생각나고 뭐.. 웃기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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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식들이 이렇고, 인식에서 삐져나온 언어들이 저렇고, 임차인과 건물주는 울상에 진상. 구청에선 전국 최초라며 으쓱. 대기업은 말쑥, 쥐뿔도 없는 나는 투자자 된 마음으로 전화라도 해볼 것처럼 열심히 사진 찍다 괜히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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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특히 ‘하마터면 그럴 뻔한’, ‘무심코 그럴 뻔한’ 언어와 행동들을 계속 검열하고 성찰하게 된다. 그런 종류의 메커니즘에 의해, 오늘도 능숙한 신세한탄 끝에, 다시 노동에 대한 지루한 숭고함으로, 작은 행복에 대한 지겹도록 감사함으로 일과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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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Jiyoung Yeom

3 thoughts on “역세권+숲세권 내품안에

  1. – 이미지파일 이름이 영문이어야해요. 파일명이 한글로 되어서 안 떴던겁니다. ^^
    – 고담시티 그림, 네이버로드뷰에는 진짜공간로고를 빼면 좋을 것 같아요. 인용해서 쓰는 것이니 출처만 밝히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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